나의 국토종단기

국토종단기 - 4

아랑의기사 2009. 3. 20. 16:08

국토종단기 - 4


- 길에 대한 단상

우리에게 길이란 얼마나 소중한가? 길이 없으면 방향을 가늠하기 어렵고, 전진하는것도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길과,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인생의 길을 따라 가는게 편하고 안전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때로는 모험을 통해 또는 어려움을 뚫고 새로운 길을 만들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한다. 결국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믿는 신념에 따라 전진하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닿게 마련이다.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걷는 자는 선배들에게 고마움을 느껴야 된다. 그리고 선배가 될 자들은 후배들이 제대로 올바른 길로 따라 올 수 있도록 올바른 정도의 길을 만들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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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찾은 기념으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올라가는 길 한편엔 무덤이 잘 정돈되어 있는 폼이 지난 명절에 벌초를 한 듯하다. 무덤가에 앉아 물을 마시고 귤을 먹고, 김밥도 하나 먹었다. 꿀맛이다. 휴식을 마치고 짐을 정리하는데 아뿔사~! 길을 잃고 빽빽한 수풀을 헤치는 과정에서 배낭 옆구리에 넣어 놓은 물이 없다. 물을 두통을 준비했는데 한통이 사라진 것이다. 본격적인 등산은 이제부터 시작인데 물도 없이 등산을 해야 하다니. 낭패다. 하지만 나에겐 귤이 있고, ‘산은 그리 길지 않다‘ 라고 생각하니 못 갈 것도 없을 것 같았다.


일단 가 보기로 마음을 먹고 길을 재촉했다. 조금 더 올라가자 방송탑으로 이어지는 포장도로가 나온다. 포장도로를 따라 걸음을 옮기다 보니 자동차 소리가 들린다. 지프차가 한 대 올라 오는게 어찌나 반갑던지 촌스럽다고 생각이 들지만 손을 흔들어 줬다. 그 쪽에서도 고개를 까닥하며 인사를 받아주지만 왠지 표정만은 이상한 놈처럼 쳐다보는게 역력하다. 하긴 차로 쉽게 올라올 수 있는 길이니 그럴만도 하다.


10여분을 올라가니 방송탑 아래 널찍한 장소가 나온다. 본격적인 등반을 시작하는 길이다. 앞서 올라온 지프차는 한쪽에 주차되어 있고 몇몇 사람들이 경치를 살펴보고 있다. 한눈에 들어오는 경치가 아름답다. 그리고 광활하다. 남해안? 아니 서해안? 남서해안이라고 하는게 정확할 것 같다. 저 멀리 보이는게 진도이고 그 옆이 무안군 신안(신안은 섬인가 보다), 바로 발 밑으로 널따란 평야가 한 눈앞에 펼쳐져 있고, 그 사이에는 육지와 섬을 가르는 바다가 보인다. 하늘은 전형적인 한국의 가을하늘. 정말 혼자보기 아까운 장관이다. 힘들게 올라와서 그런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갈길이 멀다. 본격적인 등산은 이제부터인데 길을 잃고 헤메는 동안 힘을 너무 소진시킨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옆에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고 이것 저것 물어봤다.

“아저씨 미황사까지 가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아저씨가 날 흘끗 보더니 이렇게 말한다.

“원래 두시간 반코스인데 아마 한시간 반이면 갈 겁니다.”

이 분은 원래 이 고장 토박인데 오늘 내가 헤메인 길을 어렸을때 소를 끌고 돌아다녔다고 한다. 소에게 풀을 먹이기 위해 방금 헤메인 숲을 넘어 다니다니? 그 힘든길을? 어쩌면 오늘 넘은길이 이 젊은 아저씨가 어렸을 때 다니던 길은 아니었을까? 의심이 든다. 길 좀 잘 만들지.....ㅋㅋ


출발시간은 12시경 아침 8시부터 길을 떠났으니 4시간을 허비한 셈이다. 어떻게든 빨리 오늘 목적지까지 가야하는데.... 벌써부터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일단 배를 좀 채우고 출발했다. 역시 소문대로였다. 달마산은 결코 아름다운 산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하지만 달마산에서 바라본 남한땅 서남끝단의 경치는 정말 아름다웠다. 산에서 만남 사람들과 서로 인사를 하면서 들은 바로는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아서 경치가 좋다고 말하면서 운이 참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날씨가 좋지 않은날은 이런 멋진 경치를 볼 수 없다고 하니, 운이 좋은게 분명하다.

물이 없으니 일단 몸 속에 수분을 축적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조그만 암자에 들러 물을 좀 얻어마셨다. 산 정상에 어찌 이런 암자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낭떠러지 바로위에 암자가 하나 있다. 아쉽게도 암자의 이름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 스님은 한명뿐이고 나이도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데 산꼭대기에 혼자 수행중이신가 보다. 물 한잔을 얻어 마시고 길을 재촉했다. 다리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아 걸음은 여전히 슬로우 슬로우를 외치고 있다.


아무래도 등산로 입구에서 만난 그 아저씨가 나를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다. 1시간 반을 왔지만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지나온 방송탑을 보니 내가 쉬고 있는 봉우리가 딱 중간인거 같다. 봉우리가 너무 많아 일일이 이름을 외울수도 없다. 올라가서 서면 다시 내리막이고 내리막이다 싶으면 다시 오르막이다. 오르고 내리는 인생역경 아니 등산역경이다. 중간 중간 만나는 분들과 자연스레 인사를 하며, 역시 산은 이게 좋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도 자연스레 인사를 나누고 친절하게 대해준다. 하지만 주말에 다니는 관악산은 그렇지 않다. 마주치다 인사를 하는 사람은 그 만큼 드물다. 시골과 서울의 차이란 이런건가?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스스로 고독해지지만, 사람이 드문 곳에서는 아무 허물없이 금새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된다. 건네받는 인사도 따사롭고 정겹다. 그래 이게 좋아서 한때 지리산에 미쳐서 혼자서 여행을 다니는 습관이 들었던것 같다.


그렇게 등산을 하고 미황사에 도착한 시간은 3시 반. 예상시간보다 두시간이 더 걸렸다. 나에게 이게 지극히 정상이다. 충분히 주변의 멋진 장관을 구경하며, 사진도 찍고, 충분히 쉬기도 하고 이렇게라도 포기하지 않고 가기만 한다면 결국 목적지에 닿으리라 믿는다. 내려오는 길을 물었는데 어떤 아저씨 한분이 나더러 절대 무리하지 말라고 한다. 그래 절대 무리 안하고 싶고, 할 수도 없다. 산은 또는 인생은 무리하면 큰일 난다. 게다가 오늘은 나에게 더 이상의 수분도 없다. 얻어 마실수도 있지만, 그 정도로 절박하진 않다. 그리고 산에 오면서 물도 없이 오느냐는 핀잔이 창피스럽기도 하다. 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하지만 그런 핀잔을 듣는게 왠지 기분 나쁠거 같다. 쓸데없는 자존심이다.


미황사에 도착해서 한참을 쉬었다. 반나절 동안 산과 바다와 들판을 원없이 둘러본 느낌이 든다. 머리 속에서 떠올려보고 있자니 다리가 아프다. 신발을 벗어 보니 물집은 잡히지 않았다. 평소 주말에 짬을 내어 안양천변을 걸은게 효과가 있나보다.


미황사에 도착하면 물을 사서 마실 수 있을거라 예상했지만 그 흔한 슈퍼도 없고 민가도 없다. 내려오는 길엔 식당이 있지만 인적은 없어 보인다. 버스도 다니지 않는다. 한참을 걸어 내려왔지만 보이는건 논과 밭뿐 아무것도 없다. 방향상으로는 오른쪽 길을 택해서 가야한다. 무작정 걷기 시작 2시간을 걸어 6km를 왔다. 물과 음료수를 마시고 조금을 더 걸었다. 다리에 힘이 없다. 오전에 무리한데다 제대로 된 식사도 하지 못했다. 아침은 컵라면과 김밥으로 떼웠고 점심도 중간 중간 삼각김밥으로 떼웠다. 오늘 숙박하기로 마음먹은 남창까지는 약6km 어차피 걷기로 목적한 길은 아니다. 영전에서 국도롤 타고 걸어왔더라면 남창은 훨씬 지나쳤을 것이다. 내가 원래 목적했던 길로 복귀하는 길은 일단 버스로 이동해서 복귀하기로 마음을 먹고 버스를 탔다.


남창에 도착해 보니 버스 정류장도 있고 농협도 있고, 면사무소도 등등 사람이 북적거리며 사는 동네다. 하지만 버스정류장에서 가게를 하는 아저씨에세 물어본 결과는 허탈했다.

“아저씨 이 동네에 자고 갈 여관 같은게 있나요?”

“없어”돌아온 대답은 단 두글자 “없어“ 상당히 불친절하다. 여기도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인가 보다. 낮선 사람과의 대화는 이런식인가 보다. 다시 산이 그립다. 할 수 없이 택시 기사에게 물어봤다. 식사도 하고 잠을 자려면 완도로 넘어가야 한단다. 택시를 타고 완도로 들어가서 숙소를 잡았다. 미터요금을 안누르기에 물어봤다.

“기사님 미터요금 안누르셨는데요?”

“여기선 미터요금 같은 건 잘 안눌러요. 2km 미만이면 2천원, 3km이면 3천원입니다.”

편한건지, 속고 있는건지 감을 잡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미터기는 뭐하러 달고 다닐까?


모텔에 도착해서 방을 잡았다. 요금을 3만 오천원이라고 한다. 혼자니까 깍아달라고 했다. 3만원이라고 한다. “에이 혼잔데 좀 더 깍아줘요”라고 하니까 2만 오천원이라고 한다. 역시 깍으면 깍아주는 좋은 전통?이 살아 있다. 한번 더 깍을껄 그랬나? 그런데 3만원을 주니까 거스름돈이 없다고 이따가 준다고 한다. 왠지 불안하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주변 식당을 물색하다가 기사식당에 들어갔다. 손님이 별로 없다. 백반을 시켰는데 반찬이 장난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많은데다가 오늘 결혼식 피로연이 있었다며 피로연 음식을 담아서 종류별로 더 준다. 오늘 왠 종일 수분공급이 적은 탓인지 자꾸만 목이 메인다. 국물을 떠먹으며 꼭꼭 씹어서 먹는다. 배가 고프고 갈증이 심한데 꾸역 꾸역 먹다간 체할 수도 있고. 혼자서 체하면 약국도 없는 이런곳에서 고생할까 싶어서 이다. 아무튼 저녁을 먹는데 30분도 넘게 걸렸다. 보통때 식사 시간을 생각하면 세배가량 더 든 셈이다. 하긴 군대 있을 땐 30초만에 식사를 끝낸적도 있으니 상당히 오래 먹은듯하다. 그 많은 반찬들을 종류별로 다 집어먹으며 부족한 영양분을 공급하려는 일념으로 꿋꿋이 혼자 앉은 자리에서 다 몰아 넣었다. 가격은 단돈 오천원, 왠지 미안하다. 너무 많이 먹은거 같은데 딸랑 오천원이라니. 이래서 난 전라도가 좋다.


아침을 먹을곳이 없을듯하여 슈퍼에서 컵라면을 샀다. 삼각김밥이 두 개 남았으니 내일 아침엔 컵라면과 삼각김밥으로 때울 계획으로 샀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여관에 뜨거운 물이 나오는 정수기가 없었던거 같다. 모텔에 들어가는 길에 카운터에 물어봤다.

“아줌마 컵라면 먹을 따뜻한 물이 있나요? 내일 아침에 먹고 갈려고 하는데”

“어차피 난 밤샘하니까 아침에 오면 뜨거운 물이랑 김치랑 줄께요” 하신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오늘은 운이 참 좋다.

방으로 돌아와 집에 전화를 하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불을 끄고 텔레비전을 자동 꺼짐상태로 예약하고 잠이 든다. 몹시 피곤했던지 쉬이 잠이 든다. 드넓었던 평야와 끝없이 맑았던 하늘과 바다와 그리운 섬들의 영상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듯하다. 이제 이틀이 지나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해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등산을 시작하기 전 해남 평야 1]

 

 [등산을 시작하기 전 해남 평야 2]

 

  [오늘의 여정을 바라보며]

  [남해안 전경]

  [등산을 마치고 내려온 평야에서 바라본 달마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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