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국토종단기

국토종단기 - 2

아랑의기사 2009. 3. 20. 15:34

국토종단기 - 2


3:00 이제 도보여행의 첫 발을 내디딜 시간이다. 한걸음 뚝 떼어 땅끝마을을 출발했다.


한적한 국도가 너무 좋다. 주말이면 사람이 많이 오겠지만 평일이라 그런지 차들도 별로 없고 특히 걸어가는 사람은 나 혼자다. 구불 구불한 도로를 따라 걷다보니 뒤쪽으로 땅끝마을이 보인다. 길에는 나 혼자 뿐이다. 소리도 질러보고 노래도 불렀다. 한 시간쯤 걸었을까? 넓게 펼쳐진 국도가 앞에 보이는데 저 멀리에서 뭔가 꾸물거리는게 있다. 분명 사람은 아닌데 뭔가 꾸물거린다. 비닐봉지가 바람에 흔들리는건가? 좀 걸음을 옮기다 보니 그 시커먼 물체가 내 쪽으로 오고 있는것 같다. 점점 실체가 드러났다. 개다. 셰퍼트는 아니고 믹스견인것 같은데 색깔이 흑갈색이다. 얼굴은 시커먼 털로 뒤덮여 있다. 지금 2차선 국도상에 아무도 없고 달랑 개하고 나하고 불과 100여미터의 거리를 두고 마주보고 걷고 있는 것이다. 솔찍히 난 개가 무섭다. 어렸을 적 개에게 번데기를 주다가 커다란 셰퍼트 발톱에 얼굴을 왕창 긁힌 경험이 있는지라 평소에 개를 좀 무서워 하는 편이다. 30년이 훨씬 지난일이지만 아직도 그 일이 눈 앞에 선하다. 내가 4살~5살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아주 어렸을때 일인데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걸 보면 그때 상황이 얼마나 무서웠는지를 미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아무튼 내 눈앞에 펼쳐진 상황은 좀 걱정스런 상황이다. 아무도 없는 길가에서 좌우로 피할곳도 없는 상황에서 출신을 알 수 없는 덩치 큰 개와 맞딱뜨리다니. 여행 초장부터 왜 이리 꼬이는 걸까? 하지만 피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꽁무니 빠지게 뒤돌아서 도망갈 수도 없다. 길 옆에서 잽싸게 주먹만 한 돌을 두 개 집었다. 그리고 개?를 향해 걸었다. 겁먹은 표정을 보이면 분명 공격 해올게 뻔하다. 용감하게 적진을 향해 한발 한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50미터, 40미터, 30미터 점점 가까워져 온다. 서로 마주보고 걷기 때문에 거리간격은 빠르게 줄어든다. 약 20미터를 남기고 개가 우뚝 멈춰선다.


“뭐냐? 왜 서는 거지? 공격하기 위한 적진의 탐색이냐?”


녀석은 고개를 약간 숙인 상태로 나를 쳐다본다. 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겉으론


“너 따위는 무섭지 않아~!” 라는 몸짓을 보이며 하지만 돌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때였다. 녀석이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더니 길을 건너간다. 직각으로. 상당히 교통질서를 잘 지키는 녀석이다. 차도를 횡단할 땐 직각으로 최단 거리로 횡단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배운것 같다.

“오호~ 보통이 아닌데, 상당히 훌룡한 주인 밑에 있었던 녀석인가 본데 너도 국토 종단 중이냐? 그렇다면 통일전망대에서 거꾸로 내려온거냐?” 별별 질문이 다 생각이 난다.


길을 건넌 그 녀석은 나와 2차선의 거리를 두고 스쳐지나갔다. 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예의 녀석을 주시했다. 녀석도 나를 주시하며 계속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이제 그 녀석과 나의 거리는 -15미터, 지나쳤다는 애기다. 그런데 그 녀석이 계속 나를 쳐다본다. 나도 계속 쳐다봤다. 역시 계속 걸음을 옮기면서 그 녀석은 다시 거리를 횡단했다. 그러니까 나를 피하기 위해 길을 두 번이나 횡단한 것이다. 교통질서 준수에 삼강오륜을 아는 녀석이 분명하다. 어른이 길을 가니 행여 폐가 될까 걱정하여 길을 건너서 지나친 후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아오는 걸로 봐서 상당히 가정교육이 잘된 녀석이 분명하다. 녀석이 계속 나를 쳐다본다. 이제 서로간의 거리는 상당히 떨어졌다. 안전권이다. 그 녀석도 이제 갈길을 가고 있다. 간혹 뒤를 돌아보긴 하지만 계속 걷고 있다.

“저 녀석 배는 안 고픈가? 갈증도 날 것 같은데...” 측은지심이 발동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녀석은 벌써 저 만큼 멀어져 있다. 괜찮은 녀석인데 물이라도 좀 줄껄 하는 생각이 든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길을 걷는다. 국토종단을 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는 사실을 알겠다. 도로 옆 옹벽에 온통 돌로 긁어서 글을 써놓은게 많다. “OOO&OOO 국토종단 파이팅!”“OO야 보고싶다. 여기는 국토종단 누구누구” 기타 등등해서 불건전한 내용의 낙서들도 상당히 많다. 그리고 여기 저기 지운 흔적들도 많다. 남기려는자와 지우려는자의 처절한 투쟁의 역사가 펼쳐지는 곳. 바로 해남 땅끝마을에서 영전으로 가는 길목이다. 과연 저들은 국토종단에 성공했을까? 모두 다 성공하지는 못했으리라. 하지만 나는 시간이 좀 걸릴 뿐 꼭 성공할 것이다. Someday~!


땅끝마을에서 사구리 해수욕장까지 가는길엔 걷기 좋은 길이라고 쓰여있는 곳이 중간 중간 전망 좋은곳이라는 표지와 함께 상당히 많다. 벤치가 있거나 팔각정이 놓여져 있어 쉬어가기는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왠지 경치 좋은곳이라는 표현은 작위적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계속되는 좋은 경치란 바다가 보이는 풍경이므로 딱히 경치 좋은곳이라는 말을 너무 강요하는것 같아 싫다.


정자가 놓여진 곳에 앉아서 휴식을 취한다. 좋은 전망을 만끽하려 했으나 바로 코앞에 소나무가 자리 잡고 있어 경치를 가린다. 이럴땐 저걸 잘라내야 하나? 아니면 살려야 하나? 그것 참 고민이겠다. 좋은 경치를 보여주기 위해 나무를 베어낸다는 건 좀 심하다. 옮겨 심는게 낫겠다. 좋은 경치는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고 고요한 적막속에 양수기 모터 돌아가는 소리만 윙윙 거리며 귓전을 파고 든다.


사구미 해수욕장 도착. 철 지난 해수욕장은 썰렁하기 그지 없다. 우리나라 해수욕장 어딜 가나 마찬가지다. 혼자서 떠나는 여행을 할 때는 해수욕장은 피하는게 좋다. 예전에, 그러니까 15년전인가? 첫 직장생활에 실망해서 대학원을 가기로 결심하고 혼자서 낙산 해수욕장에 간일이 있었다. 대학시절 마지막 MT를 갔던 장소다. 뭔가 추억을 떠올려 보고 앞날의 계획을 점검하고자 가 본 바닷가 였지만 실망만 가득하고 누구에게 애기하기도 상당히 부끄러운 여행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처럼 주인공이 외로운 바닷가를 거닐며 또는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모래사장에 앉아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그건 좀 멋있다. 그 때 나도 그걸 생각하고 따라해 봤다. 그냥 앉아 있기 뭐해서 버드와이저 한병도 샀다. 때는 4월 초였던가? 바람이 약간 차가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닷가 모래사장에 맨발로 앉아 맥주를 마셨다. 바람이 약간 세게 불어왔다. 좀 추웠다. 젊은 남녀 한떼가 전방 30여미터 앞에서 지나가는게 보였고 이따금씩 사람들이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지금 내 모습도 영화 주인공처럼 멋있어 보일까? 생각해 봤다.

“멋은 개뿔, 상당히 시원한날 시원한 모래사장에 앉아 시원한 맥주를 마셔본 기억이 있는가? 차가운 맥주가 뱃속에 들어가는 순간 위에서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거북한 속을 달래기 위해 트럼을 억지로 해대고 가져온 맥주는 다 마셔야 겠기에 30여분을 버드와이저 쪼매난 병 하나와 씨름했다. 멋 부리다 얼어 죽는다는 말 그거 진짜다. 도저히 못 먹겠기에 모래사장에 적선하고 일어나서 민박집에 들어가서 아랫목에 배깔고 누웠다. 그러다가 밤엔 술집에 가서 혼자 또 맥주를 마셨다. 술만 먹다 왔다. 남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다 한가지 있다. 다시는 영화 주인공 흉내 절대로 내지 말자는 교훈.


영전까지는 10km라고 했던거 같다. 한비야씨가. 하지만 내가 분석한 바로는 12km가 맞다. 오는 길 내내 국도변에 있는 표지판을 분석한 결과다. 또 한가지 증거는 내가 부지런히 3시간 넘게 걸었기 때문이다. 어른이 보통 1시간에 걷는 거리는 4km이니까 4곱하기 3은 12 해서 12킬로미터가 맞을거다. 내가 토목기사니까 내가 더 정확하다고 확신은 하지만 한비야씨랑 맞짱토론을 해보면 왠지 질 것같아 꼬랑지를 말아야 겠다.

아무튼 영전에 도착했는데 민박이 없덴다. 아니 있긴 있는데 밥 먹을데가 없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영전백화점” 주인 아저씨에게 물어봤다. 대한민국에서 아마도 가장 규모가 작은 백화점이 확실한 영전백화점 아저씨의 의견은 버스타고 해남에 나가서 찜질방에서 자고 내일 첫차로 다시 오라는 것이다. 그게 젤로 싸고 편할거 같다며 추천해 주신다. 그렇게 하기로 했다.


한참을 기다려 버스를 탓다. 서울로 치면 시내버스쯤 되는 버스일텐데 시골이라 비싸다. 3,750원이란다. 버스 맨 앞좌석에 앉아서 기사님과 이런 저런 애기를 했다. 나더러 국토종단 중이냐고 물으신다. 그렇다고 했더니 해남에 왔으면 달마산은 꼭 가보라고 하신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산과 관련된 잡지사에서 설문조사를 했는데 다시 가보고 싶은 산 1위에 랭크된 기록이 있고, 남한의 금강산이란 말도 있다며 꼭 가보라고 하신다. 그러다가 또 두륜산도 꼭 가보라고 하신다. 천년이 넘은 나무가 있다는데 두륜산도 참 좋다고 하신다. 이내 고민에 빠졌다. 어찌할까? 두 군데 산을 다 보려면 시간이 너무 지체될 것 같았다. 저녁을 먹는 내내 어디를 갈지 고민이 됐다. 마음 같아서는 내일 하룻만에 산 두 개를 다 가보고 싶었다. 한편으론 오늘 영전까지 왔으니 내일도 영전에서 출발해야 되겠다는 강박관념이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기사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찜질방에 들어갔다. 시설은 그리 좋은편은 아니었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좋았다. 이정도면 조용히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오산이었다. 저녁 8시반쯤 도착해서 샤워를 하고 잠을 청하려 찜질방으로 올라간 것이 대략 9시반 쯤. 잠을 청하려 해도 텔레비젼소리와 밝은 조명으로 인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한시간여를 누워있다가 도저히 잠을 못잘것 같아 다시 목욕탕으로 내려왔다. 목욕탕에 딸린 수면실에는 한명이 잠들어 있고 이불이 펼쳐져 있었다. 왠 이불이냐 싶어 얼른 나도 이불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여전히 방문밖에서 들려오는 TV소리와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신경을 거슬렸다. 한시간여쯤 누워있었나? 누군가 나를 깨운다. 목욕탕에서 일하시는듯한 분이 이 이불은 주인이 있는거라며 내놓으라 하신다. 애고.... 할 수 없이 이불을 내어주고 다시 찜질방으로 돌아갔다.


 12시가 넘어서 그런지 조명이 좀 어두워져 있다. 목욕탕에서 가지고온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잠을 청했다. 한 시간여를 잠을 청하는 노동?에 시달리다 겨우 잠이 들은듯하다. 피곤한데도 불구하고 잠이 오질 않으니 집이 그립다. 나이를 먹을수록 집을 떠나는게 힘들어지나? 집사람도 그립고 예원이도 보고싶다.

 

  사구미 해수욕장은 사구리 앞에 있다.

 사구미 해수욕장 근처에서 만난 일몰.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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