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종단기 - 8
국토종단기 - 8
국도를 벗어나고 싶어 지방도를 찾아서 길을 벗어났다. 영암 읍내를 통하지 않고 곧바로 나주쪽으로 방향을 틀기 위해 금정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정비가 그런대로 잘 되어 있는 길인데도 길에 관리번호가 없다. 국도도 아니고 지방도도 아니고 뭔지 잘 모르겠다. 이따금씩 나타나는 이정표엔 골프장까지 남은 거리만 나온다. 여기도 경치가 참 멋지다. 어제 걸었던 다산초당 들어가는 지방도도 참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이쪽 지방도들은 참으로 경치가 좋다. 환경 친화적이란 말은 이럴때 쓰라고 만든게 아닌지 생각된다.
이정표가 없는길을 한참을 걸었지만 별다른 이정표도 없고 관리번호도 안보인다. 점심을 걸렀는데.... 길은 거의가 오르막길이다. 한참을 가니 언덕위에 간판이 하나 보인다. 인가도 없는 그곳에 시인과 촌장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왠지 분위기 있어 보이는 간판이다. 커피와 음악이 있을법한데 사실은 아니다. 매뉴를 보니 오리, 백반 뭐 그런거다. 대단히 실망이다. 혼자서 오리를 먹기 그래서 비상식량으로 간단히 요기하고 금정으로 향한다.
한참을 올라가니 갈림길이다. 이정표도 없다. 지도상의 방향을 보니 직진하는게 맞는것 같다. 발길은 왼쪽으로 가고 싶다. 내리막길이니까. 하지만 방향이 오르막길로 가라고 말한다. 잠시 다리쉼을 하면서 생각했다. 역시 방향을 골라 가는게 이성적이라 판단이 서길래 힘들지만 그쪽길을 택한다. 새로 포장된 길은 아스팔트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다. 한참을 올라가니 경치좋은곳이라는 표지가 보인다. 벤치가 있길래 앉아서 쉬고 싶은데 차가 한 대 주차되어 있다. 사람은 차안에서 잠들어 있고 창문을 살짝 열어놨다. 피곤해서 잠시 쉬고 있나보다. 아니면 근무중 땡땡이거나..... 경치를 보니 드넓은 영암의 평야가 보인다. 멀리 월출산의 장관도 보이고 하지만 안개인지 운무인지 대기에 가득찬 습기가 시야를 흐릿하게 만든다. 태양은 여전히 강력하게 빛살을 보내주고 다리는 피곤하다고 아우성이다.
조금 더 올라가니 언덕위의 하얀집이 보인다. 식사와 음료라고 써져있는 레스토랑이다. 인적이 드믄 이런곳에 멋진 레스토랑, 넓은 주차장에 차가 달랑 한 대 서있다. 주인차인가 보다. 별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 옆엔 절도 하나 있다. 레스토랑을 뒤로하고 조금 걸었는데 등산로 입구가 보이고 차들이 몇 대 주차되어 있다. 차장사를 하시는 아주머니가 오뎅과 컵라면, 칡즙등을 팔고 있다. 다리 쉼도 할겸 요기도 할겸 배낭을 풀고 오뎅을 먹었다. 컵라면을 먼저 봤더라면 컵라면을 먹었을건데 먼저 눈에 띤게 하필이면 어묵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파는 그런 류의 어묵은 별로 배가 부르지 않다. 그렇다고 배가 많이 고프지도 않다. 커피한잔을 더 마시고 차장사를 하시는 아주머니와 이런 저런 애기를 나눴다. 얼마전에 읽은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책을 그 아주머니가 읽고 있길래 그 책에 대해 잠깐 애기하고 길을 물었다. 오늘중 나주까지 가는것은 도저히 불가능할거 같아(대충 20킬로정도 남은 듯) 버스를 타려면 어디까지 가야되느냐고 물었는데 이 동네에 안살아서 잘 모른다고 하신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버스를 한 대 본거 같다. 일단 금정까지 가서 물어보라고 하신다.
한참을 걸었다. 물도 다 떨어지고 배도 고프다. 여기 저기 감나무가 많은데 감들이 엄청 크다. 어린시절 한겨울에 장독에서 꺼내먹던 홍시감이다. 한겨울에 장독에서 꺼내먹는 홍시감을 먹은게 초등학교 이후론 기억에 없다. 살짝 얼음이 언 그 홍시감이 그 시절엔 최고의 간식이었다. 대봉이란 마을로 기억이 된다. 정말 감이 크고 탐스럽다. 올핸 비가 많이 오지 않아서 과일농사가 잘 됐다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지 정말 크고 맛있게 생겼다. 차가 있음 한상자, 아니 몇상자 사서 부모님들께도 나누어 드리고 싶고, 우리 예원이도 좋아할거 같은데...... 아쉽지만 그냥 지나친다. 택배로 붙일 것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4시 45분 금정면 소재지에 도착했다. 오늘은 이만 쉬어야 할 것 같다. 피로가 겹친탓인지 상당히 피곤함을 느낀다. 금정에서 나주행 버스를 탓다 나주까지는 4천오백원, 잔돈이 없어 다음 정거장에 잠깐 설 동안 잔돈으로 바꿔서 내라고 하신다. 정확히 어딘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버스가 터미널에 도착했을때 담배를 한갑사고 잔돈을 바꾸기 위해 가게에 들어갔다. 시골마을에 참 예쁜 아가씨가 카운터에 양반자세로 앉아서 티비를 보고 헤헤 하며 웃고 있다. 예쁜 건 예쁜거다. 하지만 티비를 보니 좀 한심스럽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쇼프로다. 언제부터인가 그런걸 보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는데 이제 나도 늙은건가? 잔돈으로 바꿔서 버스 요금을 내고 나주로 향했다.
원래 계획대로 라면 일요일인 내일까지 여행을 진행해야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내일의 일정이 별로 좋지 않다. 일단 서울행은 막히는 걸 고려하면 늦어도 12시에는 서울행 버스를 타야한다. 그렇다면 내일 오전 금정에서 나주시내까지 들어와야 하는데 금정에서 나주까지는 대략 16킬로미터, 나주에서 자고 아침에 버스로 금정까지 이동한다? 해도 12시 전에 오기란 여간 힘든게 아니다. 그렇다면 나주에서 하룻밤을 자고 일요일에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건 숙박비 낭비다. 버스를 타면 12시전에는 서울집에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 여기서 이번 여행을 일단락 짓기로 마음을 바꿨다. 다음 여행은 금정에서부터 시작하면 되니까. 그럼 그땐 첫날 광주까지 갈수도 있을 것이다. 광주시내와 나주시내는 거의 붙어있으니 어렵지 않을 것이다. 버스표를 예매하고 김밥집에 들어가서 비빔국수와 만두를 시켰다. 좀 많은 양이긴 하지만 점심도 굶었고 서울까지 가는동안 잠을 잘 자려면 배불리 먹어야 한다. 잠은 쉬이 들었고 휴게소에서 갈증을 달래려고 이온음료를 하나 사서 한 번에 다 마셔버렸다. 행여 중간에 소변이 마려우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내 몸은 수분을 배출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서울에 도착해서도 여전히 갈증이 심하다. 이온음료 한통을 또 다 마셨다. 그리고 집에 들어오는 길에 맥주를 사서 들어갔다. 그리고 오랜만에 집사람과 마주앉아 맥주를 마셨다.
여행을 시작하면 뭔가를 얻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아직까지는 특별한 게 없다. 그렇다. 단지 특별한 것이 없을 뿐이다. 사소하고 중요한 몇 가지는 이번 여행에서 건졌다. 하지만 아직 더 가야할 길이 있고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뭔가 더 큰 것을 얻지 않을까 생각된다. 통일전망대까지 언제쯤 갈 수 있을지 기대된다. 몇 차 원정으로 이 길이 마무리 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마무리 될 것이다. 그날이 가급적 불혹을 넘기지는 않았으면 싶다. 만으로 불혹이라면 2년 가량 남았다. 20대에 해야 할 일을 뒤늦게 하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건 안한 것보다는, 늙어서 과거에 왜 내가 그때 포기했을까라는 후회를 하는 것보다는 확실히 괜찮은 짓거리다. 괜찮게 늙어가고 있는것이다. 벌써부터 다음 여행길에 대한 설레임이 꿈틀거린다.
2008년 11월 29일
2009년 3월 23일 다시 출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