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국토종단기

국토종단기 - 7

아랑의기사 2009. 3. 20. 16:36
 

국토종단기 - 7


네쨋날 11월15일 토요일 맑음


아침 일찍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식사를 했다. 간밤에 준비한 컵라면과 삼각김밥. 좀 부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강진쯤이면 아침을 먹을만한 식당도 있을것 같은데 괜시리 아침을 부실하게 먹은게 못내 아쉽다.


7시에 길을 나선다. 조용한 거리, 약간은 서늘 하지만 상쾌한 공기가 코끝으로 느껴진다. 아침마다 이런 공기를 마시며 일터로 나서는 사람은 행복할 것 같다. 시내를 빠져나오는 마지막 길에서 슈퍼에 들러 물과 장갑을 하나 샀다. 3일을 사용한 장갑은 때로 얼룩이 심한데다 등산하는 과정에서 구멍도 생겨서 버렸다. 강진을 벗어나는 길은 4차선 도로로 접어들면서 시작된다. 4차선 도로를 올라탔다. 차들이 빠른 속력으로 달려간다. 4차선 도로를 걷는건 오늘이 처음이다. 왠지 지루하다. 무섭기도 하고, 차량을 마주보고 걷는게 안전한 건 알지만 건너갈 길은 보이지 않는다. 길 중앙엔 중앙분리대가 있어 쉽지 않다. 한참을 가다보니 4차선 도로 옆으로 농로가 보인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새로 만든 대부분의 국도는 농경지가 있을 경우 「부체도로」라는 걸 만든다. 물론 도로의 유지보수와 농로로 활용할 수 있는 용도이므로 포장도 되어있다. 비탈길을 내려서 농로를 걸었다.


농로를 걷다보니 다시 지방도로 연결이 된다. 한적하고 경치도 좋다. 가로수는 은행나무다. 노랗게 단풍이 들어 있고 길 옆 농경지는 수확이 끝나서 볏짚 색깔을 띠고 있고 파란하늘과는 아주 잘 어울린다.


9시 20분 성전에 도착했다. 드디어 월출산의 장관이 눈앞에 펼쳐진다. 눈앞에 보이는 월출산의 경치가 좋아 카메라를 꺼냈다. 사진을 찍으려는데 밧데리님께서 사망하셨다. 우째 이런일이..... 눈으로 사진을 찍고 아쉬움을 그곳에 놔둔 채 걸음을 옮겼다.


11시 40분경 휴게소에 들렀다. 국도변에 있는 조그만 휴게소. 김밥이 있느냐 물으니 아직 없단다. 매뉴를 고르다 평소에는 잘 먹지 않는 햄버거와 콜라를 집어 들었다. 이번 여행중 월출산은 한번 가려고 마음먹었지만 계획은 수정되었다. 월출산을 등반하려면 하루를 꼬박 소비하여야 하는데 그러고 싶진 않다. 짧은 여행시간이 원망스럽다. 한비야씨 처럼 피곤하면 하룻쯤 쉬었다 가고 그러면 좋으련만 나에겐 그런 시간적 여유가 없다. 물론 하룻쯤 쉬어도 되겠지만 왠지 낯선 이곳에서 하루를 혼자서 보내긴 싫다. 집사람도 보고 싶고 우리 예원이도 보고 싶다. 예원이 특유의 익살과 애교가 그립고 집사람이 해주는 음식도 그립다. 역시 집이 최고다.


조금 더 걸었다. 길가에는 무화과를 파는 사람들이 꽤 많이 나와있는데 그 중 한곳을 지나치면서 아주머니 혼자 있길래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고생하는데 무화과나 좀 먹고 가요”라고 친절하게 말해주신다. 무화과 열매 두 개를 건네주시는데 사실 어찌 먹어야 될지 잘 모르겠어서 물어봤더니 친절하게 가르쳐 주신다. 사실 무화과를 먹어 본 기억은 있는데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꼭지를 잡고 껍질을 벗겨서 그냥 먹으라 한다. 먼지만 아니면 그냥 통째로 먹는 거란다. 솔직히 맛은 별로다. 어디에 좋냐고 물어보니 여성들에게 좋다고 하신다. 부인병, 피부에도 좋고, 뭐에도 좋고, 이래저래 좋은데 특히 여자들에게 좋덴다. 거의 만병통치약이다. 역시 우리땅에서 나는 것은 모두 좋은가 보다.


혼자서 걷는길은 바쁠것도 없지만 머릿속만은 복잡하고 바쁘게 돌아간다. 어제 오전에 만난 할아버지의 말씀과 우리 농산물과 책에서 읽은 내용들이 머릿속을 스친다. 한비야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기르고 싶으면 국토순례를 하라고 했다. 이덕일의 역사서를 읽을땐 역사속의 많은 유적과 기념이 될만한 곳을 꼭 찾아보고 싶었다. 사실 이번 여행을 계획하게 된 배경에는 이덕일 선생이 있었고, 한비야씨는 단지 여행의 길잡이 역할을 한 셈이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들판길 저 밭과 산들에 우리 조상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스며있을 것이다. 절절한 사연과 가슴이 찟길듯한 한과 응어리들도 이 땅위에 사그라 들어 있을것이다. 그러한 땀과 피와 눈물이 뿌려진 길위를 걷고, 그것들을 양분삼아 자라나는 농산물들을 먹고 살아가고 있다. 그 양분으로 난 지금 이 길위를 걸을 수 있는것이다. 사람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고 그 흙은 우리의 후손들을 키울 것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선조를 먹고 후손들은 우리를 먹을 것이다. 이외수의 말처럼 인간은 우주에서 와서 우주로 돌아가는 그 어떤 존재이다. 세상만물이 우주를 향해 있듯이 우리도 우주를 향해 한발 한발 걸어가고 있다. 오늘 나는 이 길을 걸의며 우주안에서 다른 모든 것들과는 한층 더 가까운 우리 선조들의 흔적을 느끼며 이길을 걷고 있다.


우리는 학교에서 우리 민족은 위대하다고 배운다. 단일민족이고 오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배운다. 흰옷을 즐겨 입는 백의민족이라고 배우며 이는 우리가 그만큼 깨끗하며 청렴한 것을 좋아한다는 의미라고 배운다. 오천년의 역사를 통해 단일혈통을 가지고 있음은 대단한 것이라고 배운다. 지금 누군가 나에게 그런말을 한다면 이렇게 대꾸해주고 싶다.


"그래서요?“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겨우 그게 다이지 않은가? 그러면서 나라를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민족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나라만 사랑하라고 한다. 왜 민족을 사랑하면 않되는가? 그게 궁금하다. 나라와 민족은 별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왜 단일민족은 그리 강조하고 오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가? 그냥 대한민국 건국이래 6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게 더 정확한 표현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자유대한을 악의 무리로부터 보호할 수 있었다고 자랑하는게 더 합리적이지 않은가 말이다.


우리의 역사는 한없이 슬프다. 외세에 정복 당하고 또 다른 외세에 의해 해방을 맞았지만 또 다른 외세에 의해 점령당하고 그 과정에서 민족의 적들이 우리 사회를 접수하게 만들고, 안중근은 테러리스트로 전락하는 현실이다. 교육수준이 높은 국가라고 떠들어대지만 정작 중요한 뿌리에 대한 교육에 관한한은 너무도 모르는게 많다. 우매한 백성들을 속이는 일은 한없이 쉬운 모양이다. 거짓 언론과 자신들만의 왕국을 만들려는 사람들이 지배하는 사회. 거기에 놀아나는 우매한 민중들. 광야에서 외치는 자들은 감옥에 가야하는 현실이 일제시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땅은 여기에서 우리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한다. 그래도 우리 선조들의 피와 땀은 여전히 우리에게 먹을 음식을 제공한다. 이것이 우리가 이땅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이다. 나라사랑이라고 하면 그 실체는 불분명하다. 나라가 뭔가? 국민인가? 정치집단인가? 공무원인가? 도대체 누구를 사랑하라는 말인가? 나라사랑이라면 우리국민을 사랑하고 이 땅을 사랑하고 이땅의 역사를 사랑하고 선조들이 이땅을 지켜내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숭고한 뜻을 사랑하는 것이다. 내 재산을 불리기 위한 썩어빠진 정신은 사랑하여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그러한 것들은 배척하는 것이 나라사랑이다. 때때로 나라사랑이란 표현을 쓰기가 괴로워지게 만드는 인간군상들로 인해 의기소침해 질 때가 있다면 선조들의 숭고한 뜻과 피와 땀으로 지켜온 이 강산을 생각하며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지켜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것이 국토종단을 권장하는 한비야씨의 뜻이 아닐까 조심스레 짚어본다.


멀리 터널이 보인다. 4차선 도로도 별로 좋지 않은데 터널이라니, 그 탁한 공기라니... 끔찍하다. 4차선 도로옆의 부체도로를 걷는데 도로 하부로 연결된 통로가 보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통로로 들어가니 깊 건너편이 나오는데 예전 국도 그러니까 구국도가 나온다. 2차선 도로다. 차도 별로 없고 간혹 농사를 짓는분들이 스쿠터를 타고 지나간다. 한적하고 좋은 길이긴 한데 오르막이 좀 심하다. 하지만 매연을 듬뿍 마실수 있는 터널길은 사절이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잘 포장된 산길을 걸어간다. 언덕배기를 힘겹게 올라가니 이제 내려가는 길이다.


길 왼편으로는 월출산 국립공원이라고 적혀 있다. 길가엔 수십년은 됐음직한 아름드리 나무들이 울창하다. 차도 없고 그늘도 시원하고 나무도 울창하고, 금상첨화다. 완전히 나 혼자만을 위한 길이다. 좀 내려가는데 휴게소가 보인다. 예전에 새로 뚫린 국도가 생기기전에는 꽤나 북적댓을것 같은 휴게소지만 지금은 아무도 보이지 않고 개만 두 마리가 주유기에 매달려 있다. 내가 지나가자 한참을 짖어댄다. 내가 시야에서 사라질때까지........


개들의 특징을 잠깐 살펴보면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에 사는 개들은 낯선 사람이 지나가도 잘 짖지 않는다. 하지만 인적이 드문곳으로 지날때는 개들이 내 발자욱 소리만 듣고도 짖어대기 시작한다. 가끔은 그 소리가 귀에 거슬리기도 한다. 돌맹이라도 집어서 던져주고 싶다. 하지만 이내 깨닫는다. 개들은 짖기 위해 집에서 키워진다. 개가 짖는다고 같이 짖으면 개가 된다. 개가 짖으면 짖는대로 가만 놔둬야 한다. 사람이 많이 다니거나 도로 바로 옆에 매어져 있는 개들은 한번 흘끗 보고 짖지 않는다. 그 사람의 패턴을 이미 분석했다는 애기다. 하지만 인적이 드물거나 길거리에 떨어진 곳에 매어져 있는 개들은 냅다 짖어대기부터 시작한다. 사태를 바르게 바라보는 힘은 불필요한 짖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설프게 사태를 인식하는 짐승은 일단 짖어놓고 본다. 어째 사람이 사는 사회와 좀 비슷한 부분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아니면 말고


아무튼 영암으로 연결되는 구국도 13번은 경치가 그만이다. 아름드리 나무들과 단풍들, 올 가을은 제대로 된 단풍을 인파에 시달리지 않고 맘껏 구경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