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국토종단기

국토종단기 - 6

아랑의기사 2009. 3. 20. 16:27

국토종단기 - 6


3시 10분 다산초당 도착? 아니다. 큰 길에서 3백여 미터를 들어가니 정약용선생 유물관이라고 한다. 초당은 좀 더 걸어가야 한다고 한다. 지친 다리를 끌고 한참을 돌아가니 다산명가라는 식당이 나온다. 식당겸 민박집이다. 전통 국악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 나오고 있다.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아서 좋다. 한적한 산 아래에서 듣고 있는 국악과 휴식은 평화롭다. 잠깐 다리쉼을 하고 부족한 수분과 영양을 보충하고 초당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 초당은 산중턱쯤에 있다. 올라가는 길이 예사롭지 않다. 아주 울창하다. 다산선생의 처남인 윤종신의 묘를 지나는데 4시도 안된 시각이건만 어두컴컴하다. 우거진 수풀이 숲의 나무들이 상당한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말해주는 듯 하다.


초당이다. 아니 기와집이다. 초당이란 말은 한문을 그대로 번역하면 풀로 지붕을 엮었어야 하건만, 눈앞에 드러난 건 기와집이다. 설명을 보니 초당이 없어져서 공무원들이 기와집으로 다시 지었다 한다. 알려진바에 의하면 다산은 원래가 근검절약하는 분이신데 이런 깊은 산중에 기와집을 지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있는 기와집은 1957년에 다시 지어진거라고 하고 다시 초당으로 복원할 계획이 있다고 한다. 

 

 “이런 기와집을 보려고 그 먼 길을 돌아서 온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든다.


숲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을 더 들어가면 천일각이 나온다. 이 또한 선생이 살아생전에 있던 구조물이 아니라고 한다. 단지 여기서 먼 바다앞 흑산도 쪽을 바라보며 형님을 생각했을 것이란 추측으로 후예들이 만든 구조물에 불과하다고 한다. 경치는 볼만하지만 어딘지 우리나라 전통과는 좀 먼듯한 부분이 여기 저기 발견된다. 쇠 못을 사용한 부분도 보이고, 콘크리트도 보이고, 여기 저기 접합부가 맞지 않는걸로 봐서 전 후에 기술자가 부족한 상황에 지어진게 아닌가 싶다.


천일각 옆으로는 백련사로 가는 숲길이 이어져 있다. 산길이 험하지 않으니 이 길을 선택하기로 했다. 어차피 오늘 가는 방향쪽이니 산길이라고 해서 특별히 나쁠건 없다. 백련사 주지스님과 다산선생과의 인연은 각별하여 수 많은 일화가 있다. 그 일화를 생각하며 그 길을 걸어본다. 다산선생이 걸었을 그 길을 한발 한발 걸어본다는 생각에 감개가 무량하다. 산죽나무와 야생차밭이 있다는데 야생차는 도대체 어떤건지 알 수가 없다.


5시 무렵 백련사에 도착했다. 사찰을 구경하고 갈까 아니면 그냥 갈까 망설여진다. 사실 너무 피곤하기도 해서 그냥 갈까 하다가 절 앞에 섰는데 조그만 개 한 마리가 뛰어나와 사정없이 짖어댄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개짖는 소리만 들리는 사찰. 기와 지붕을 보니 일부는 지은지 상당히 오래된듯하고 일부는 새로 지은 건물이다. 오르막 계단이 보이는데 올라가기가 싫다. 인적이 뜸하니 저리 짖어 대는가보다. 인적도 없는 사찰앞에서 개와 눈싸움을 한바탕하고 돌아섰다.


해는 이미 서산에 기울기 시작했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 어서 빨리 쉬고 싶다. 강진까지는 대략 7킬로쯤 남기고 있는 것 같다. 백련사에서 내려오는 길에 낯익은 이름이 보인다. 문익환? 대안학교 간판인듯 한데 문익환씨가 운영을 하는가 보다. 백련사를 내려오는 길은 동백나무 숲이 울창하다. 천연기념물 보호구역이란 표시도 보인다. 확실히 여수에서 보던 동백숲보다 훨씬 더 빽빽하고 나무도 훨씬 더 굵다.


다시 지방도로 내려왔다. 지도상에 표시는 되어 있지만 번호도 없는 지방도다. 1시간여를 걸었다. 날은 서서히 어두워져가고 철새 조망지라는 곳에 오니 슈퍼가 하나 보인다. 버스시간을 물어보니 곧 올거라고 한다. 얼마 남지 않은 길을 오늘만은 버스로 가기로 마음을 바꿨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강진만에서 새소리가 들린다. 이리저리 날아가는 듯한 날갯짓 소리도 들리고, 청둥오리가 저희들끼리 주고받는 대화 소리도 들린다.


한참만에 버스가 온다. 역시 시골은 도시와는 다르다는 생각을 하며 버스를 탓다. 금방 올거라는 시간은 삼십분이 넘고, 조금만 가면 된다는 거리는 대략 일킬로가 넘는다. 서울시내 버스정류장간 거리가 대략 300미터라는데 일킬로면 버스정류장이 최소한 3개다. 우린 그런 도시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여긴 시골이다. 조금이란 거리를 가려면 대략 20여분이 걸린다. 20여분 어쩌먼 그리 긴 시간은 아닐지도 모른다. 20분의 걷기는 적당한 운동도 되지만 무언가를 충분히 생각 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도시에 사는 우리는 그러한 여유가 없다. 바쁠땐 한 정거장도 버스를 탄다. 버스비 천원은 20분의 시간보다 훨씬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정말 소중한게 시간일까라고 생각해 본다. 그게 아니길 빈다. 물론 시간은 중요하지만 시간보다 소중한게 충분히 더 많다고 생각이 된다.


가지고 있는 현금이 없다. 강진터미널에 도착해서 현금을 좀 인출했다. 그리고 숙소를 잡았다. 숙박비를 깍을땐 현금을 줘야한다. 특히나 시골에선, 그런데 오늘은 곧바로 2만오천원이라고 한다. 내친김에 혼자 자니까 깍아달라고 했다. 주인은 아닌것 같다. 절대로 안깍아 준다고 한다. 카드로 계산했다. 샤워를 하고 낮에 산 맨소래담 대용 약품을 종아리와 장단지에 골고루 발랐다. 후끈 후끈하다. 시원한건가?


저녁은 중국음식이 먹고 싶다. 중국집에 가서 쟁반짜장을 시켰는데 곧 문닫을 시간이라고 쟁반짜장은 안된다고 한다. 예배를 보러 가야한단다. 오늘 금요일인데...... 상당히 열성신자인가 보다. 이제 7시 반도 되지 않은 시간에 문을 닫으려는 식당을 본건 처음이란 생각도 든다. 짬뽕 곱빼기를 시켰다. 차라리 다른 식당을 갈 걸 하는 후회가 든다. 왠지 기름진 음식을 먹어야 할 거 같은데 짬뽕을 시키다니 한때는 그냥 짜장면만으로도 행복했었는데 점점 입만 고급이 되어가고 있다. 나이란 놈은 참 많은것을 요구하는 녀석이다. 짬뽕곱배기가 사천 오백원. 싸다.


다시 아침에 먹을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사서 숙소로 들어와서 집에 전화를 하고 막바로 잠자리에 든다. 오늘은 푹 쉬어야 한다. 내일과 모래의 여행을 위해. 아참 갈아입을 옷이 없다. 빨래를 하고 내일 배낭에 집어넣어야 하는데 내일 아침까지 마를까? 걱정이 된다. 방법을 찾았다. 세탁물이 건조하는데 필요한 것은 높은 온도와 바람이다. 특히 바람의 영향은 절대적이다. 높은 온도는 단지 건조함을 만들어 내기 위한 수단일 뿐. 옷걸이에 세탁물을 걸고 선풍기를 틀었다. 대부분의 여관에는 선풍기가 있으니까 아주 좋은 방법이다. 직빵이다. 겨우 한시간 틀어놨는데도 어느 정도 말랐다. 소매와 카라가 있는 부분만 더 마르면 되므로 선풍기를 끄고 잠자리에 든다. 이번 여행일 5일 중 3일이 지났다.

 

 [다산초당]

 [천일각]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