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국토종단기

국토종단기 - 5

아랑의기사 2009. 3. 20. 16:16

국토종단기 - 5

세쨌날 11월 14일 금 맑음


일기예보에서는 흐리고 한때 비가 온다고 서울 우리집에서 보던 그 귀여운 기상캐스터가 나와서 알려준다. 글쎄... 믿어도 될까요? 안 믿고 싶다. 비는 도보여행에 가장 큰 적이다. 제발 오늘은 참아주고 밤에만 왔으면 좋겠다.

어제밤에 사다 놓은 컵라면을 들고 프론트로 나가서 아줌마에게 뜨거운 물을 부탁했다. 친절하게도 김치를 한 사발을 담아주신다. 잘익은 신김치다. 뜨거운 물과 함께. 내방으로 돌아와 컵라면을 먹고 김밥을 먹는다. 티비에서는 이런 저런 뉴스가 나오지만 귀에 들어오진 않는다. 지도책을 펼치고 오늘 갈길을 가늠해 본다. 오늘의 목적지는 강진. 조금 먼 길이다. 특히 다산초당을 경유해서 가야되기 때문에 하룻만에 가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가다가 않되면 버스를 타리라 마음을 먹고, 최대한 쉬지 않고 길을 재촉하리라 마음을 다 잡아본다.


6시40분 길을 나선다. 아직 해는 떠오르지 않았지만 어둠은 이미 서쪽으로 물러간 상태다. 새벽의 바다를 바라보며 완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를 건넌다. 남창까지는 3km 한시간여를 걸어 어제 버스에서 내린 터미널에 도착했다. 귤은 도보여행에 휼룡한 간식이다. 어제 이곳에서 산 귤 덕분에 물이 없이도 무사히 등반을 마칠수 있었다. 오늘은 어제보다 많이 고마운 마음에 2천원어치를 샀다. 천원에 일곱 개, 총 14개를 사서 배낭에 넣고 물을 두통을 사서 배낭안에 넣었다. 행여 또 나도 모르는 사이 떨어질까 두려운 마음에 배낭 옆구리엔 넣지 않았다. 커피를 한잔하고 다시 길을 나선것은 7시 20분


30여분을 걸어 남창 휴게소가 있는 55번 지방도 버스정류장 까지 왔다. 어제 너무 무리한 다리가 상당히 피곤한가 보다. 아직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말썽이다. 버스정류장이 반가워 잠깐 휴식을 취하면서 옆에 보이는 이정표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국토종단 땅끝에서 16km”라고 써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바람이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첫날 영전까지 12km, 어제 등산한 거리를 빼고 오늘 완도에서 여기까지 족히 5km를 왔는데 이제 16km라니?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어제 하루는 완전히 놀았다는 애기다. 아니 하루종일 약 3km를 온 셈이다. 그렇다면 오늘 좀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건만 다리는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나 힘들어~”라고.


9시38분 신원리 도착

고산 윤선도 유적지로 가는길이 왼쪽길 나는 강진쪽으로 직진하는 길을 택한다.


길을 가다가 농사를 짓는분들 처럼 보이는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길 맞은편에서 오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자서 배낭을 메고 걸어가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궁금한걸까? 아니면 의심스러운걸까? 혹시나 해서 먼저 인사를 했다. 아주머니가 물어보신다.

“어디까지 가요?”

“오늘은 강진까지 갈건데요”

“고생이 많네요”라고 응원?을 해주신다. 한참을 가다 버스정류장에 홀로 서계시는 할머니 한분께도 똑같이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아따 고생허요 잉. 어제도 한 총각이 배낭메고 지나가는디 우리 사우(사위)하고 닮아가지고 한참 쳐다봤는디. 아자씨도 우리 사우랑 참 비슷허게 생겨부렀네 잉~!” 하신다. 사위가 보고싶으신 가보다. 할머니에게 그 사람이 언제 갔느냐고 물어보고 길을 재촉한다. 하루의 거리는 충분히 따라 잡을 수 있는 짧은 거리가 아니다. 내 걸음으로 하루면 최소한 30킬로 많으면 40킬론데 도저히 따라 잡는건 불가능 할 것 같다. 길가에 떨어진 귤껍질을 보며 혹 그 사람이 버리고 간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


1시간쯤 가다가 할아버지 한분을 만났다. 주된 휴식장소인 버스정류장에 들어가려는데 혼자 앉아 계신다. 먼저 인사를 드리고 이런저런 애기를 하다가 아주 옛날일수도 있고 가까운 과거일수도 있는 이야기를 해주신다.


“일정 말기때 말여 그 일본놈들이 머리가 아조 좋았당게. 꼭 말단에는 한국놈을 쓰는디 이 놈들이 이 논은 세금을 얼마, 저 논은 얼마. 그 놈들이 얼마나 지독시런지 말도 못헌다고.” 일본인들이 농민들 땅을 어떻게 착취했는지도 자세히 기억하고 계신다. 그래서 대부분의 농민들은 일본지주들의 농경지를 소작 붙여먹고 살았는데 그 밑에 빌붙어 같은 동포들 피를 빨아먹는 조선놈들이 더 나쁜놈이라며 입에 거품을 무신다. 그래서 여쭤봤다.


“어르신 혹시 그때 일본놈들 앞잡이 하던 사람도 한 마을에 같이 사나요?”


“같이 살지. 지금도 살아있는 놈들 있당게. 그 놈들이 얼마나 나쁜놈들인디 그때 다 쳐죽였어야 했당게. 지금 대통령도 친일파 아니라고?“


그러면서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시는데 시골분 같지 않게 한문도 잘 쓰시고 말씀도 잘하신다. 그 분의 말씀이 맞을것이다. 내가 태백산맥에서 읽은것도 실제와 많이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렇게 살아계신분에게 생생하게 듣기는 처음이다. 우리의 슬픈 역사를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불과 50여년전의 일이건만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부분은 분명 역사의 심판을 받을날이 올것이라 생각이 된다. 하지만 작금의 우경화된 역사교과서를 보면 가슴이, 정신이 찟겨져 나가는 기분이다. 지하에 계신 조상님들이 들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일이다. 버스가 와서 할아버지와는 작별을 하고 길을 재촉했다.


12시 시전가든 도착, 기사식당이다. 손님은 역시 나 혼자. 백반이 6,000원이다. 인적 없는 주유소 곁에 있는 기사식당치곤 비싸다. 딴 곳보다 천원이 비싸다. 하지만 배는 고프고 일단 주문을 했다. 반찬이 거창하다. 조기매운탕까지 나온다. 종류별 밑반찬에 조기 매운탕 까지 먹는데도 육천원밖에 안하다니? 놀라운 일이다. 혼자 먹는 밥이 맛이 없을수도 있지만 이미 그건 극복한지 오래 된 애기다.


직장생활 대학생활을 통틀어 혼자서 식사를 하는것은 한편으로 큰 어려움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혼자서 자취를 하고 특히 영어공부, 기술사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 혼자서 식사를 하는것은 일과가 되었다. 어쩔때는 차라리 혼자서 식사하는게 훨씬 편리하다. 다른 누군가와 식사를 하려면 그 사람을 기다려야 하고 때론 매뉴를 통일해야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혼자서 먹을때는 그런 과정이 생략된다.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책을 읽을 수도 있다. 하루는 24시간이고 한정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혼자서 식사를 한다는게 여간 도움이 될 때가 많다.

처음엔 청승맞다는 생각에 혼자서 식사를 할 땐 주로 편의점에서 김밥과 컵라면을 사서 사무실에서 처리했다. 하지만 식당에서 혼자서 밥을 먹는 요령을 터득한 뒤론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방법은 이렇다. 일단 식당 아줌마하고 친해져야 한다. 식당 아줌마하고 친해지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일단 들어갈 때 인사를 하고, 이런 저런 시시한 애기들을 건넨다. 뭐가 맛있느냐? 뭐가 빨리되는냐? 날씨가 어떻다거나....  그러고 밥을 먹다가 맛있는게 있으면 꼭 칭찬을 해라. 그러면 좀 더 얻어 먹을수도 있다. 그러면서 서서히 말문을 틔우고 단골이 되면 혼자서 식사하는 것은 절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단 친해진 식당에 가면 호칭이 어느 순간부터 바꾼다. 누님 혹은 이모, 혹은 고모 또는 할머니 가족적인 호칭을 사용하는 순간 그 식당에서는 더 이상 손님으로 대접받지 않는다. 이젠 가족으로 대접받기 시작한다. 그럼 그때 부턴 주문자체가 달라진다.


“밥 좀 줘요~!” 그럼 대충 평소에 잘 먹는걸로 알아서 차려주기 시작한다. 그럼 혼자 먹는 식사는 친척집에서 먹는듯한 효과를 발휘하고 혼자 먹는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게 된다. 이것이 내가 자주 사용하는 아니 살아가는 방법이다. 그렇게 해서 다양한 사람들과 친해지면 다양한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들을수도 있다.


12시 40분 식당을 나선다. 10여분을 걸어가니 마을이 있다. 약국에 들러서 맨소래담을 달라고 하니, 그건 없고 비슷한건 있다면 이상한 걸 준다. 보령제약에서 나온건데 효과는 비슷하다고 한다. 종아리를 걷고 약을 발랐다. 화끈 화끈한게 시원하기도 하고, 내 다리지만 달래주지 않으면 말썽을 일으킬 것 같다. 충분히 발라주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약간 상태가 양호해 진것도 같다.


일기예보와는 달리 날씨가 화창하고 좋다. 출발할 때 모텔에서 수첩에 흐림이라고 적었던걸 지우고 다시 맑음이라고 고쳐 적었다. 집사람의 충고대로 썬크림을 고루 잘 발랐다. 어제 산에서 좀 소홀했더니 약간 따끔거리는 느낌이다. 휴식 중간 중간 충분히 썬크림을 발랐다. 지난 봄 사이판에서 구입한 썬크림이다. 그런데 너무 마구잡이로 바른탓에 입속으로 썬크림이 좀 들어간 듯하다. 쓰디쓴 그 맛이 아무리 입을 행궈내도 지워지지 않는다.

 

계속